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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변

황지우, 『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(1998)』

- 안부 1 -

안녕하신지요, 또 한 해 갑니다
연말연시 피하여 어디 쓸쓸한 곳에 가서
멍하니 있고 싶어요
머리 갸우뚱하고 물밑을 내려다보는
게으른 새처럼
의아하게 제 삶을 흘러가게 할 거예요
해질 무렵이면
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은 삶인데요
이대로 내버려 둘까요
자꾸 얼마 안 남았는데 하는 생각뿐예요
급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 바퀴자국이 난
건널목을 지나
맞은 편 성요한병원 붉은 벽돌담에
몸 기댄 겨울나무 그림자 보았어요



- 안부 2 -

안녕하신지요. 또 한 해 갑니다
일몰의 동작대교 난간에 서서
금빛 강을 널널하게 바라봅니다
서쪽으로 가는 도도한 물은
좀더 이곳에 머물렀다 가고 싶은 듯
한 자락 터키 카펫 같은
스스로 발광하는 수면을
남겨두고 가대요
그 빛, 찡그린 그대 실눈에도
對照해 보았으면, 했습니다


마추픽추로 들어가는 지난번 엽서,
이제야 받았습니다
숨쉬는 것마저 힘든
그 空中國家에 제 생애도
얼마간 걸쳐놓으면 다시
살고 싶은 마음 나겠지요마는
연말연시 피하여 어디 쓸쓸한 곳에 가서
하냥 멍하니, 있고 싶어요
머리 갸우뚱하고 물밑을 내려다보는
게으른 새처럼
의아하게 제 삶을 흘러가게 하게요 

황지우, 『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(1998)』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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